▲ 김경웅 논설위원. 한반도통일연구원 원장, 정치학 박사.

우리 사회는 기업인들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인색한 편이다.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자라나는 세대가 본받아 나도 저렇게 사업을 일으켜 봐야겠다는 수범적인 기업인이 드물어서일까? 그것 역시 아니다. 기업인들은 어렵게 사업을 일궈서 직원들 월급주고, 나라 곳간을 채우는 경제 애국자다. 사회가 정상이라면, 존경받는 기업인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이제 우리도 색안경을 잠시 내려놓자. 대접받을 만한 경제 애국자들은 다시 봐야할 때가 됐다.

금년은 유일한 박사가 탄생한지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유수의 제약회사 유한양행을 1926년에 창시한 분이다. 일제 식민하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질병을 보살피고자 한 것이다. 그는 독립운동에도 관여했고, 학교를 세워 교육 입국에 힘을 보탰다. 유한양행은 처음으로 기업 공개를 해서 투명 경영에 앞장 섰다. 종업원 지주제라는 이름이 생소할 때, 정식 도입했으며 전문 경영인들이 사업을 키워나갔다.

1971년 3월 11일,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이 공개됐다. 손녀가 학교에 다니면서 쓸 등록금 1만 달러를 뺀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한다는 내용이었다. 딸에게는 유한학원 부지 내의 5천평을 활용해 유한동산으로 꾸미라고 당부했다. 개인 재산의 상속이 아니라 학생들을 위해 쓰라는 것이었다. 아들에겐 대학까지 보내줬으니 스스로 살아가라는 말을 남겼다. 유일한 박사의 일화는 잔잔하지만, 늘 울림이 컸다. 이 거인의 행적이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교훈으로 수록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라 밖에선 스웨덴의 국민기업 발렌베리(Wallenberg Family)가 입에 오르내린다. 투명 경영과 공정하며 경쟁력있는 후계 과정이 발군이어서 그렇다. 특히 150년 넘게 5대에 걸쳐 이뤄진 기업 대표자의 선정 과정은 이채롭다. 후계자를 뽑는기준은 우선 능력이 있는지를 보면서 10년 넘게 검증 기간을 거치게 된다. 후계자는 자신의 능력으로 명문대학을 나오든지,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가문의 도움 없이 국제금융기관이나 기업에 취업해 실무 경력을 쌓아야 한다. 이 기준에 따라 2명의 복수 후계자를 뽑아 견제와 균형 원칙으로 경쟁력 있는 경영을 하도록 되어 있다. 노조와의 협력관계도 돈독하다. 노조 대표는 필히 이사회에 포함, 경영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 기업군은 재벌 그룹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발렌베리 가족이라고 내세운다. 발렌베리 기업군에는 세계 초일류 회사들이 도처에 있다. 대표적인 기업들은 142년 전통의 산업용 기계업체 아트랍스콥코를 비롯해 가전 업체 일렉트로룩스와 통신장비업체 에릭슨, 항공방위산업체 사브 등이 있다.

발렌베리 가족은 년 매출액이 2천억 달러(약210조원)에 달한다. 매년 스웨덴 국내총생산의 30%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다. 우리 1년치 정부 예산의 70%쯤 되는 액수다. 보통 기업들은 세금이 많다고 스웨덴을 떠났다. 발렌베리 가족은 이익의 85%을 법인세로 내면서 대학, 도서관, 박물관 등에도 기부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같은 기업이 경쟁력이 없을 수 있을까? 발렌베리 후계자중 누구도 세계 부자 명단에 오른 적이 없다고 한다. 많이 벌어도 그만큼 나누기 때문이다. 스웨덴 국민이 발렌베리 가족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롯데그룹의 경영진 다툼이 심상찮다. 막장 드라마라는 혹평이 나올 정도다. 여론의 추이 역시 관심과 걱정을 넘어 혀를 차는 형국이다. 지금 롯데 사태는 거의 활화산의 경지에 이르렀다. 언제든지 폭발하고 용암이 흘러내려 사회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자칫 국민적 분노의 단계에 이르면, 정부가 개입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롯데그룹은 일본내 사업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가뜩이나 일본과는 골칫거리가 많은데,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소지는 없을까? 그 이전에 롯데그룹 스스로 사태를 잘 정리해야 마땅하다. 화를 자초하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 없다. 롯데그룹이 존경과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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