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웅 논설위원. 한반도통일연구원 원장, 정치학 박사

우리 사회에서 화제가 된 롯데월드 타워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외국인들이 설계나 마스터 플랜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 가장 길고 세계 여섯 번째인 인천대교도 마찬가지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살린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사들은 잠자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우수한 인력과 창의적인 인재들은 있다. 그동안 창의적인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지, 아니면 실력을 발휘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던 것인지 자문해볼 일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해외 건설 수주액은 지난해 총 660억 달러(79조 2천여억원)로서 세계 6위를 기록했다. 이 액수는 올해 정부 살림예산인 375조 4천억원의  20%가 넘는 수준이다. 올해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상반기중 254억 7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32% 감소한 수치다. 그럼에도 올해 우리의 해외 건설은 독일을 제치면서 5위에 올라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사현장도 중동과 아시아를 넘어 북미지역, 유럽과 중남미, 아프리카로 지평을 넓히고 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삼는 셈이다. 해외 건설은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석유제품 등 수출 주력 제품보다 외화를 더 많이 벌어들이고 있다. 지속적으로 한국의 주요 외화 획득원인 것이다.

앞으로의 숙제는 무리한 수주 경쟁을 지양하는 것이다. 해외건설은 적자 누적의 기현상을 없애면서 수익성을 위주로 하는 알토란 현장으로 바꿔가야만 한다. 이처럼 우리의 건설 부문은 양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건축 서비스 산업인 설계부분의 경쟁력은 OECD 27개 국 중 20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 역시 양(量)이 아니라 질적인 문제다. 다행히 늦게나마 작년 6월 5일 ‘건축서비스 산업 진흥법’이 시행되어 설계 경쟁력도 도약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이 법의 핵심은 단순히 가격이나 실적에 따라 설계자가 선정되는 것이 아니다. 설계자의 역량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입찰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건축기술과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자면 창의적이고 예술적 소양을 지닌 설계자들이 활약해줘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한국 건축의 앞날에 등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서울대 공대 교수 26인이 공동 집필한 저서가 화제다. ‘축적의 시간’ 제하의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은 한국 산업 기술의 현 주소를 낱낱이 파헤쳤다. 한마디로 한국의 산업 기술은 위기 수준이며, 적절한 대안을 꼭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건축이 한 차원 높게 도약하기 위해 마땅히 받아 들여야 할 충고가 아닐 수 없다. 한국 기업은 대체로 “선진국에서 완성된 것을 가져다 쓰는 방식에 익숙해서 기술 씨앗을 뿌리고 묘목을 키워 큰 나무로 성장시키는 경험을 축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즉 “개념을 새롭게 만들고 최초의 설계를 그려내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선진국들은 오랜 발전 경험을 축적해 왔음에도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이 ‘제조업 르네상스’를 선언해서 현실화 시켜가고 있는 사례가 그러하다. 일본은 일찌감치 부가가치가 높은 부품 소재산업에 선두주자로 나섰다. 독일은 정보산업기술을 제조업과 묶는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시행해오고 있다. 중국 역시 광활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대규모 기술 투자를 통해 앞선 나라들을 추격해오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향후 10년 내에 세계 제조업의 2강(强)대열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를 위해 산업 구조를 고부가가치 위주의 제조 방향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지금과 같은 흐름이라면 중국은 추격자가 아닌 추월자로 나서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한국의 혁신 나침판은 ‘창조적인 파괴’로 까지 흐름을 틀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 “기업⦁정부⦁대학이 이제 벤치 마킹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경험과 지식 축적을 지향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교수들은 강조했다. ‘한강의 기적’은 끝났지만, 그 기적을 만든 DNA는 우리에게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건축 한류도 K-POP 이상으로 지구촌을 달굴 수 있다. 문화가 부(富)를 창조하는 세상이다. 문화로서의 건축 한류는 우리에게 새로운 먹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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